지상파 방송의 '맛집 방송'은 누구나 한번쯤 보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연예인들과 아나운서가 출연해 이러쿵저러쿵 떠들며 탐방에 나서고, 그곳에선 우리네 같은 보통사람들이 환호성을 치르며 "최고"라고 치켜세우는 음식과 맛집들. 그런데 아시나요? 이런 맛집들이 실은 '맛이 정~말 없는 집들'이라는 사실을. 올해 6월 극장가에서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코믹하게 폭로한, 짧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다큐멘터리 한편이 출연했었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 <트루맛쇼>(감독 김재환)입니다.
<트루먼쇼>를 패러디한 듯한 <트루맛쇼>의 설정이 굉장히 재미 있습니다. - '방송사의 방법으로, 방송사를 촬영하기!'
각 방송사가 간판으로 내걸고 있는 사회비판프로그램을 패러디한 장면이 무척 익살적이죠. 전화 취재를 하고 있는 기효영 PD의 모습.
<트루맛쇼> 제작진들은 경기도 일산 웨스턴돔이라는 곳에서 '맛'이란 가상의 음식점을 차리고, 지금까지 음식점들이 방송에 출연하는 과정과 똑같은 과정을 밟아 나가기 시작합니다.
우선 가게를 꾸밉니다. 여느 레스토랑 못지않는 아담하고 예쁜 인테리어 같지만 사실 이 음식점은 몰래카메라를 찍기에 최적합된 구조입니다. 카메라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구석구석 배치하기 좋은, 그래서 방송을 타기까지의 과정을 잘 담을 수 있는 곳인 것이죠.
가게 구석구석에 장치된 카메라를 점검하는 기효영 PD의 모습. 브이자하는 모습이 무척 앙증맞네요. ㅋ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걸려 듭니다. ^^;;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방송사의 잠행취재처럼 자신들이 인터뷰를 당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맛집에 출연하기까지의 비밀한 과정들을 술술 풀어 내고 있습니다. 아, 지금 출연한 사람들은 모두 광고대행사 관계자들입니다. 우리가 (TV를 통해)보고 알고 있는 맛집들은 대개 이런 대행사들이 음식점들과 협의 및 계약을 통해 촬영된 결과물들입니다. 다큐는 이런 과정을 최적화된 인테리어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대체 방송에 출연하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한 것일까요?
와우, 무려 1천만원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송들에 출연하는 대가가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맛집들 대부분이 맛의 품질로 인해서 맛집이 된 것이 아니라 음식점에서 음식을 주문하듯 방송을 주문한 결과일 뿐인 것이죠.
우리 눈에 친숙한 연예인들도 등장을 합니다. 한참 방송에 열중하는 모습,
김종민, 김신영 님의 모습. 이 방송엔 천명훈 님도 출연했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이 하는 말(대사)들은 대개 이렇게 작가들의 코치에 의해서 컨트롤 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보란듯이 방송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출연했던 방송-<찾아라 맛있는 TV>, 지금도 방영되고 있죠? ㅎ 이 날짜에 방송된 거 새삼 보고 싶더군요.
이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사장님은 방송에 진짜 한번 꼭 나가고 싶다는 말씀을 계속 하셨습니다.
'MBC, KBS, MBC에 곧 나올 집' 등 요식업계는 이렇게 '방송에 나온 것 같은' 착각으로 어떻게든 고객을 유치하려는 눈물겨운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요? 2010년에 발표된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엔 하루 515개의 식당이 나타나고 474개가 폐업을 한다고 합니다. 단 하루만에 수백개의 식당이 세워졌다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식당이 방송을 탄다면? 얼핏 생각해도 대박이 나는 것이죠. 방송사에서 소개된 맛집은 방송사가 직접 다룬 것이니까 믿을만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사람들의 인식대로 방송사는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친 후 맛집이라고 소개를 한 것일까요? 이 다큐에선 한편 이런 자료도 공개하더군요. 2010년 3월 셋째주 지상파 TV에 나온 식당은 177개, 1년으로 환산하면 무려 9229개나 된다고 합니다. 거의 1만 개나 되는 식당들이 모두 맛집일리가 있을까요? 과연 그럴까요? 여기에 <트루맛쇼> 제작진은 구체적인 실증으로 이를 반박합니다. 맛집의 전설적인 브로커와 인터뷰를 갖고 그가 그동안 방송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을 차례로 비춰줍니다. 대표적인 것이 캐비어 삼겹살이죠.
그러나 캐비어는 원래
이렇게 얼음까지 밑에 깔며 신선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매우 민감한 음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방송에서 부각시킨 지글지글 익힌 캐비어 삼겹살은 캐비어를 다뤄야 하는 이런 '요리의 상식'을 철저히 무시한 무식한 음식이었던 것이죠.
<트루맛쇼> 제작진은 이러한 사실을 알려준 프랑스 출신의 한 셰프에게 캐비어 삼겹살을 다룬 방송을 보여줍니다.
정말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죠?
이밖에도 환호하며 등장하는 고객들의 실체,
그들이 명 연기자(!)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김용언 님의 말처럼 "방송이 그렇다는 건 나도 대충은 알고 있었어"라고 해도 <트루맛쇼> 앞에선 소용이 없습니다. "무수한 유머와 냉소, 무서우리만치 직접적이고 정확한 공격으로 일관하는 이 다큐는 관객에게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짐작과 확인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트루맛쇼>의 빛나는 성과
그렇다면 <트루맛쇼>에 대한 사회의 평가는 어떠했을까요? 우선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JIFF 관객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또한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이 언론을 통해 7월 4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트루맛쇼>는 누적관객 1만325명을 돌파했습니다. 다큐멘터리 한편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1만명을 돌파했다는 건 결코 예삿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MBC가 <트루맛쇼>를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했다가 기각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오히려 관객들은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라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역효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다큐멘터리의 실질적인 성과, 즉 폭로의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요? 바로 어제인 8월 4일 언론보도를 보면 방송통신심의원회가 MBC '찾아라 맛있는 TV'와 SBS '생방송 투데이'의 맛집 프로그램에 경고 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 징계 사유는 방송심의 규정의 객관성(14조) 조항을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에이 경고가 뭐 그렇게 큰 징계라고.' 아닙니다. 경고는 방송사 재허가 심사에 감점요인으로 작용하는 중징계입니다.
아,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더군요. <트루맛쇼>의 나레이션은 다름아닌 MBC 출신 프리 아나운서 박나림 씨입니다.
전 직장을 다루는 다소 위험한 작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나선 박 아나운서에게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갈채를 보내고 싶습니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사실 여기에는 적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화를 보며 당신이 직접 듣는 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혹, 영화를 다 보신 후에도 혹 김재환 감독의 '못다한 이야기들'이 궁금하시다면 http://blog.naver.com/truetaste를 한번 방문해보세요. 그리고 주변 친구들에게 <트루맛쇼>를 추천하기를 감히 권합니다.
여기까지 읽느라 무척 고생하셨습니다. '그래도 뭐 고생은 했네' 싶으시면 아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그리고 믹시 버튼을 꾸욱~ 눌러주세요. ^^; 감사합니다. <트루맛쇼>에 대해 더 얘기하고 싶으신 분들은 디노파일 팬페이지에 오셔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주세요. ^^
by 디노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