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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컨텐츠 이야기/볼키의 <영화 메타포>

[영화] 도가니

2011년을 되돌아보면, 참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던 것 같다. 
그 중, 영화에 관련된 글을 포스팅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주로 사회적문제를 다룬 영화들을 다루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며,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 대한 영화가 도가니이다. 도가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더 많은 논란이 된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도가니에 사용된 지명, 교회, 극중 인물들은 영화를 위한 설정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사람들이 오해가 없기를 제작사에서 밝힌 바가 있다. 나도 영화를 보면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영화로 인한 2차, 3차 피해도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어서 주의가 요구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실재 광주시 장애우학교 성폭행 관련 사건을 다룬 것이어서 영화가 상여되는 내내 논란이 일었었다. 실재 영화로 인해, 재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한 점을 미루어보면, 영화의 힘이 어디까지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 영화 보는 내내 맘이 편하지 않았다. 나 또한 딸을 둔 아빠로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자행될 수 있을까란 생각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필자 역시 그러한 장애인기관에서 일한 경험과 관련 분야를 전공하였기에 더욱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강인호(공유)는 무진에 소재한 특수학교에 아는 교수의 소개로 간다. 그 때, 사고로 인해 인권운동을 하는 서유진(정유미)을 만나게 된다. 서유진은 아주 당차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불의를 못보는 캐릭터이다. 



강인호는 특수학교의 최고 권력인 교장선생님과 만난다. 특수학교도 일반학교와 마찬가지로 공립보다는 사립이 많다. 대부분의 사립학교는 재단에 의해서 움직이는데, 재단의 경우는 자산가들이 자신의 재산을 헌납하고, 그 댓가로 자신의 가족이나 친인척, 지인들을 재단이 운영하는 요직의 자리에 앉히는 경우가 많다. 지방일수록 더하다. 나 또한 장애인 시설에 근무하면서 그런 걸 많이 느꼈다. 여튼, 교장과 행정실장은 쌍둥이로 학교의 가장 큰 실세인 것이다.



행정실장은 강인호를 따로 불러, 5장을 요구한다. 난 순진하게도 500만원을 요구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영화 속의 강인호는 나보다 더 순진했다.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니...^^;

5000만원을 요구했다. 난 96학번으로 2003년에 졸업을 했었다. 당시 내 동기들 중 상당수가 특수학교의 교사로 채용이 되었기 때문에, 그 때 동기들 사이에 들린 이야기를 고려해보면, 그정도의 돈을 요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교사직을 돈으로 사고 팔아야 한다는 서글픈 사실 때문에 동기들은 어떻게든 임용고시에 합격하려고 애를 쓴 것 같다.)



강인호는 어머니께 전화해서 돈을 구한다. 어머니는 전세집을 빼서 큰 돈을 마련해 아들이 교사가 될 수 있도록 조치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의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일들이 자행되는 것은 교사라는 직장이 가지고 있는 안정성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교사라는 직책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도 무시 못할 가치이기도 하다. 



수업을 진행하는데, 뭔가 분위기가 심상찮다. 아이들이 반응이 없다. 자신이 뭔가를 열심히 할려고 하는데, 아이들은 냉담하게 반응한다. 그 이면에는 이들의 상처가 있다. 상처가 깊을수록, 사람들에 대한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렇지만, 신참 교사가 알 수 없는 일...

나 또한 유사한 경험을 겪었었다. 내가 처음 일한 곳은 장애인들과 함께 방송/영상일을 하는 곳이었다. 새로운 분야고 새로운 아이템이어서 열과 성의를 가지고 일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유 또한, 기관장에게 있었다는 것을 훗날에 알게 되었다.



박보현 선생은 자신도 여기에 10년 있었지만 아직까지 아이들이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럴수밖에...



강인호는 우연히 퇴근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따라 간다. 
'누구 계세요?' 라는 물음에 갑자기 다시 조용해진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지나가지만, 이것이 큰 사건의 시작인 것을 그가 알리는 없었다.



큰 돈을 어렵게 마련하여 행정실장에게 준다. 부정한 거래의 현장에, 함께 있는 사람은 그 지역의 경찰이다. 이렇게 부정과 거짓의 씨앗은 마치 곰팡이처럼 학교 전체를 덮고 있을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공공기관, 권력층까지 퍼져 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게 되어 있는 법.
교장과 행정실장, 그리고 그 학교에 만연해있는 악들은 조금씩 조금씩 강인호와 서유진에 의해 밝혀지게 된다. 그들이 말못하는 청각장애인들, 특히 가족도 없는, 철저하게 당할수밖에 없는 약하디 약한 어린아이들을 성폭행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되어 관련 유관단체에 해결을 요구한다.

이런 충격적인 일에 대해 행정기관은 서로 자신이 안맡으려고만 한다. 시청에서는 교육청 소관이라 하고, 교육청에서는 방과 후 일어났던 일이라 하니 시청 소관이라고 한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열받기 시작했다. 
누가 이 말 못하고 힘 없는 이들의 처절한 고통을 들어줄 수 있단 말인가?
다들 자기 살기 바빠서 충격적인 이들을 외면하는 현실이 마음 아팠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출순 없다. 이런 충격적인 사실을 그냥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직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은 살만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실이 TV매체를 통해 방영되면서 상황은 급진전된다. 이제 이들의 아픔이 해결되기 위한 실마리가 생긴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감자가 되니, 조사를 피할 순 없게 된다. 그리고 검찰에 의해 기소되게 된다.
이제 좀 해결되려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악한 사람들 또한 가만히 있진 않는다.



돈으로 해결한다.
피해자의 부모들이 대부분 찢어지는 가난, 그리고 장애.. 심지어는 지적 장애로 인해 판단력이 흐린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돈과 감언이설로 유혹해서 쉽게 합의를 받는다.

법은 공정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법이나 제도가 세력 있는 자에게 많이 기울여져 있다. 그들은 빠져나갈 구멍이 있고 빠져나갈 방법이 있으며 빠져나갈 술수를 부릴 줄 안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은 당할 뿐이다. 그리고 그걸 노리고 그런 짓을 했는지도 모른다. 악하다. 악할 뿐이다.






벌받게 해준다는 약속을 결국은 지키지 못한다.
강인호라는 한 사람이, 한 선생이 하기에는 너무 힘겨운 싸움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겪인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의를 봐도 그냥 넘어가는가보다. 해 봤자 뭐.. 라는 냉소적인 태도가 더욱 악을 키우는 건 아닌가란 생각을 한다. 그에 반해, 그런 불의에 대항해 싸우면 너무 큰 댓가를 치뤄야 한다.

그래서, 사람이 죽은 이후에는 심판이 있음을 가리키는 종교들의 가르침이 때론 무섭기도 하지만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는 악한 사람들이 더 잘 살고 더 기승을 부리지만, 결국 그들도 그들의 악에 대해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어떻게든 심판을 받는다라는 가르침은 적어도 그들이 악을 행할 때, 두려움을 줄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거짓에 맞서서 싸워야 한다. 누군가는 불의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 그 댓가가 참옥하더라도, 그 비용이 크더라도, 누군가는 그 십자가를 질 때, 그 십자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좋은 세상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민주운동의 상징이셨던 김근태 전 장관이 세상을 떠났다. 민주주의를 수호하다, 옳은 이야기를 하다 수많은 고문과 감옥행을 거쳤던 보기드문 훌륭한 정치인이다. 그러한 사람들의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싸움이 있었기에, 나같은 소시민이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런 싸움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신이 처한 곳에서 이득과 실리를 벗어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바로, 배우가 될 수도 있고, 감독이 될 수도 있으며, 작가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될 수도 있다. 

영화를 보는 내동안, 만약 내가 그 상황에 처한다면 저렇게 싸울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영화 대사 중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가족들을 먹여 살릴려면 옳은 일, 옳은 소리만 하고는 못산다'
'얘 그런 일 당했을 때, 나 거기 있었어, 하지만 아무것도 못했어. 지금 여기에서 손을 나버리면 나 솔이에게도 좋은 아빠 될 자신이 없어.'

거창한 거 아니다.
그냥, 한 아이의 아빠로서, 그리고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각자의 삶 속에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다행히 피해아이들은 좋은 후원자에 의해 보살핌을 받게 된다. 
이곳에서 그들의 아픔이 치유되고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나 또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